의지하며 살아가는사람들
20년 배구국제심판 끝내는 김건태씨
역사의현장
2011. 8. 25. 16:37
20년 배구국제심판 끝내는 김건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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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넘어 세계 배구를 대표하는 '코트의 포청천'으로 활약해 온 김건태(55)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부장이 20년을 이어온 국제심판 은퇴를 앞두고 있다. 올해 국제심판 정년인 55세를 맞은 김건태 심판부장은 오는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심판복을 벗는다. 과거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하던 김 심판부장은 대동맥이 막히는 병을 앓아 선수 생활을 접은 뒤 원로 심판들의 권유로 심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대쪽같은 판정과 뛰어난 경기 조율 능력을 인정받은 김 심판부장은 1990년 처음으로 국제 심판이 된 데 이어 1998년에는 한국인 사상 세 번째로 FIVB 심판이 됐다. FIVB 심판은 월드리그와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등 최상위 등급의 주요대회에 참가하면서 국제심판의 교육까지 담당하는 '심판 중의 심판'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활약하고 있는 FIVB 심판은 김건태 심판부장을 합쳐 11명뿐이다. 김건태 심판부장은 명예로운 FIVB 심판 자리를 무려 12년 동안 지킨 끝에 명예롭게 은퇴하게 됐다. 그동안 최상위 등급의 대회에서 판정을 내린 A매치 경기 수만 320여 회에 이른다. 가장 인정받는 심판만이 나설 수 있는 월드리그 결승에도 4차례나 섰다. 지난 7월 열린 올해 월드리그 결승전에도 주심은 김건태 심판부장의 몫이었다. 이 경기는 김 심판부장의 월드리그 은퇴 경기이기도 했다. FIVB에서는 대회를 마치고 이례적으로 김 심판부장에게 공로패와 심판진의 사인이 담긴 공을 증정하며 그동안 활약에 감사를 표시했다. 김건태 심판부장은 "경기를 마치고 동료 심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인사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면서 "인정받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 같아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건태 심판부장은 20년 국제심판 경력에서 '최고'로 꼽는 경기로 2003년 월드리그 결승전을 들었다. 브라질이 5세트에서 31-29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당시 경기에서 김 심판부장은 주심을 맡았다. "5세트에 16-16이 됐는데, '실수하면 어쩌나'하는 긴장에 다리가 후들거리더라고요. 다행히 실수 없이 경기를 마치고 나자 FIVB 임원들이 와서 '수고했다'며 저를 끌어안아 줬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건태 심판부장은 그러나 "심판은 사람이 할 일이 못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심판은 3D업종이에요. 오심을 저지를까 노심초사하는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큽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외길 인생을 걸었던 원동력은 '세계 최고의 심판이 되겠다'는 꿈이었다.
결국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이 크지만, 김 심판부장은 그럼에도 "실수도 잦았다"며 웃었다. "처음엔 '오심을 하지 않는 심판'을 꿈꿨는데, 완벽한 사람은 불가능하더라고요. 다만 완벽한 심판이 되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러고 나면 밤에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가슴에 멍이 들어요. 내색하지 않고 자꾸 견뎌내면서 더 나은 심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고시속 160㎞에 이르는 강한 스파이크가 오가는 배구 코트에서 순간의 방심은 실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축구나 농구처럼 좋은 자리를 찾아다니면서 볼 수 있는 심판들과 달리 배구 심판은 한 자리에 고정돼 있기에 사각도 많은 편이다. 오감을 넘어 때로는 육감까지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 "공격수가 때린 공이 블로커의 손에 닿았느냐 안 닿았느냐는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살짝 스치는 소리를 들으려 귀도 기울여야 하고, 때로는 선수들과 눈을 마주치며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죠" 단순히 순간의 플레이를 잘 잡아낸다고 좋은 심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 심판부장은 좋은 심판의 요건으로 ▲철저한 사생활 관리 ▲이론적인 해박함 ▲정확한 사실 판정 등 세 가지를 들었다. 도덕성과 이성, 감각이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사생활을 관리하지 못해 잡음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또 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더욱 풍부해질 수 있고, 거기에 경기 전체를 조망하고 집중할 수 있는 감각도 중요합니다" 김건태 심판부장은 "후배 중에도 좋은 심판이 될 만한 이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의 배 이상 노력해야만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죽기 살기로 장인정신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배구 심판들의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 1년에 30경기를 뛴다고 쳐도 주·부심이 받을 수 있는 돈은 1천만원 정도밖에 되지 못하니, 생계조차도 막막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면 유혹에도 취약해지게 된다"며 심판이 처한 현실에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전 세계를 누비며 활약한 만큼 누구보다도 세계 배구의 흐름에 해박한 김 심판부장은 최근 한국 배구가 부진한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봐 왔던 한국 선수 중 국제적으로 통했던 선수로 김세진과 신진식을 꼽으며 "이 둘은 공격과 수비가 모두 훌륭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가 못하다. '반쪽 선수'로는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가 없다. 또 세터들도 더 빠른 토스워크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출범 6년 만에 한국 프로배구가 큰 발전을 이뤘다. 앞으로도 발전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프로배구가 인기를 더 얻는다면 국제적으로도 조금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앞으로도 한국 프로 무대에서는 3년 더 심판으로 활약할 수 있지만, 국제 경기에서 김 심판부장의 모습을 보는 것은 11월 세계선수권대회가 마지막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기다릴 법도 하지만, 김 심판부장은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또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며 웃었다. FIVB 심판들은 대회마다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만 경기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영어로 출제되기 때문에, 잘 알던 것도 시험 때면 헷갈리기 일쑤입니다. 거기에 경기에 서는 것까지 합치면 스트레스가 엄청나죠. 이제 날씨도 선선해지는데,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습니다" sncwoo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8/14 07:00 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