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 재테크

[PF 대란] 제2금융권만 27조원…건설업계 ‘시한폭탄’

역사의현장 2011. 4. 30. 21:34

[PF 대란] 제2금융권만 27조원…건설업계 ‘시한폭탄’
PF 현황 어떻기에
기사입력 2011.04.30 08:12:10 | 최종수정 2011.04.30 11:58:2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PF 대란 현장을 가다 ◆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좀 갖다 쓰라고 얘기했는데, 이제는 만기 연장이 안 되니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이율을 높여야 한다고 합니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도 이 정도인데 중견 건설사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S건설사 PF 담당자)

LIG건설, 삼부토건, 동양건설산업 등 중견 건설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잠깐용어 참조)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건설사들은 대출금 상환 유예나 만기 연장 등을 요청하고 있는 반면, 금융권에선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출 회수나 추가 담보 요구를 강화하는 실정이다.

건설사와 금융권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양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부동산 PF사업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금융사는 대출자금이 투입될 사업 자체 수익성을 보고 대출해 준다. 예를 들어 아파트나 상가 등 부동산 개발사업 자체의 사업성을 기준으로 자금을 빌려 주는 것이다. 개발을 담당하는 시행사는 그 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분양에 들어간다. 분양이 잘되면 문제가 없지만, 사업 진행이 여의치 않거나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출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공사를 담당하는 건설사들이 금융권에 보증을 서는 게 일반적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에는 시공사 보증 능력을 웃도는 대출이 이뤄질 수 있고, 경기가 나빠지면 보증채무 특성상 사업 부실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신일수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시공사 보증 위주 구조 때문에 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성보다는 시공사 신용도가 더 중요하게 고려돼 대출이 이뤄질 수 있다. 시공사에 사업 리스크가 편중돼 대출 버블과 부동산 공급과잉이 발생하면 국가 경제 전체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는 등 부작용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구조의 PF는 2005년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대출에 나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PF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가운데 미분양 아파트가 늘고 공공발주 등 신규 수주 물량은 줄어들면서 PF대출이나 보증은 말 그대로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PF대출은 건설사는 물론 금융권에도 뇌관이다.

실례로 2000년대 초반 일찌감치 부동산 PF에 뛰어든 부산저축은행이 대표적이다. 대규모 자금을 PF대출에 올인, 지난해 말 기준 PF대출 잔액이 2조3568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71.8%에 달했다.

일반 저축은행의 PF대출 비중은 20% 안팎이다.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몸집 부풀리기에 열중하다 영업정지를 당하고 말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 전체 PF대출 잔액은 66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은행권이 38조7000억원, 제2금융권이 27조7000억원이다. 특히 2금융권 가운데 저축은행이 12조2000억원, 보험사 4조9000억원, 자산운용사 4조7000억원, 할부금융사 3조원, 증권사 2조2000억원, 상호금융 6000억원, 종합금융 1000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금융권 전체 PF대출 잔액은 지난 2008년(83조1000억원)과 2009년(82조4000억원)에 80조원을 넘었으나 경기침체와 금융권의 대출회수 등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 하지만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부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권 전체 PF 연체율은 2008년 말 4.4%에서 2009년 말 6.4%, 지난해 말 12.8% 등으로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제2금융권 연체율은 증권사 29.8%, 저축은행 24.3%, 할부금융 18%, 농협 특별회계 18% 등으로 금융권 평균치보다 훨씬 높다. 보험만 연체율이 8%로 양호한 수준이다. PF대출의 고정이하여신비율도 증권사 40%, 할부금융 18%, 저축은행 9% 등에 달한다.

금융권의 PF 관련 부실이 늘어나면서 금융권은 앞다퉈 PF에서 발을 빼려는 모습이다. 이는 건설사의 잇따른 도산에 대한 빌미를 제공할 공산이 높다. 금감원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는 제2금융권에서 PF대출 회수를 시작하면서 건설사들 자금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PF대출은 은행권에서 15조원, 비은행권에서 10조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금융권에선 이 중 절반이 넘는 13조원가량이 5~6월에 만기가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시공 능력 100위권 건설사 가운데 25%가 넘는 27개 업체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중에 있다. 올해 들어서만 6개의 건설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금융권에서의 PF대출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이에 따라 건설사 자금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당연히 무너지는 건설사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제2금융권의 PF대출 만기구조와 회수 동향 등을 점검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건설사의 추가 부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낮은 건설업체들의 경우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해소되지 않고 있어 금융권의 자금 회수 움직임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아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PF 부실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채권 처리를 전담하는 배드뱅크(잠깐용어 참조)가 ‘PF 대란’의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최근 저축은행 PF 부실채권 정리 방안과 관련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구조조정기금을 통해 일정 부분을 정리하고 있으며, 3조5000억원의 추가 기금을 앞으로 활용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PF 배드뱅크는 은행들이 공동으로 PF대출 문제를 은행 스스로 만들어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려할 수 있다. 은행권에서 검토해서 필요성이 있으면 추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PF 배드뱅크는 은행들이 출자, 특수목적회사(SPC) 형태로 설립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은행권 PF 부실채권 규모를 감안하면 설립 규모는 10조원 안팎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이 공동 대출한 4조원가량 PF 부실채권을 우선 매입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잠깐용어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원래 PF는 금융기관이 자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도나 담보물건 대신, 특정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고려해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 기법이다. 따라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수익성을 보고 금융기관들이 참여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부동산 업계에서 PF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한국형 PF는 시행사가 PF대출을 받고 시공사가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에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기존 건설회사가 대출을 받아 분양을 책임지는 구조에서는 투자 리스크를 건설회사가 떠안았다면, 한국형 PF에서는 투자 리스크를 시행사가 우선적으로 떠맡는다. 하지만 시공사의 지급보증이나 채무 인수 등이 보장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시행사들은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이다.

잠깐용어 시행사·시공사
시행사는 특정 프로젝트나 공사 전 과정의 책임을 도맡는 회사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의 대출부터 인허가, 분양, 입주자와의 계약, 입주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한다. 시공사는 시행사로부터 발주를 받아서 단순히 건물이나 프로젝트의 공사만을 담당하는 업체다. 시행사가 공사의 전 과정을 총괄한다면, 시공사는 공사비를 받고 공사만 하는 건설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잠깐용어 배드뱅크(Bad Bank)
은행 등 금융기관이 대출해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은행의 부실이 증가한다. 경제 상황이 악화돼 갑자기 부실채권이 급격히 증가하면 은행의 부실이 국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존재하는 금융기관이 배드뱅크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이나 부실채권만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이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 문희철 기자 reporte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