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민달팽이유니온과 금융정의연대, 한국청년연대 등 시민단체 대표들이 29일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정부의 전월세대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3.8.29 |
극심한 전세난 속 서울ㆍ수도권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것이다. "지금 사버려요, 더 좋은 기회는 없어요." 혹할 조건은 많다. 정부나 금융기관의 저리 대출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전세가는 치솟는데 매매가는 지지부진하니 '조금 더 보태서 그냥 사버려?'라는 심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집을 사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현재 전세난의 원인이 '매매 부진'에서 왔다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 광교 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최 아무개씨는 "너도나도 집 사기를 미루고 전세로만 살려고 하니 전셋집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전세난의 원인을 "낮은 집값 상승 기대 등으로 매매를 늦추면서 전세 수요가 증가했다"라고 분석하며 그 해결책으로 '전세 수요의 매매 전환 유도'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매매 부진이 전세난을 불렀다는 분석은 곧 집값이 오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과 통한다. 예전 같으면 집을 샀을 사람들이 집값 상승이 주춤한 지금 전세를 선택하며 관망한다는 것은 그만큼 (매매) 대기 수요가 쌓여 있다는 뜻이다. 그 대기 수요가 부동산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날이 바로 부동산 가격 상승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재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평균 67.4% (8월 기준)까지 달한 만큼 '그날'은 바로 코앞이라는 것이다. 서울 장지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차라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 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다가 그게 전반적인 분위기로 확산되면 그때부터 너도나도 우르르 매수세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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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아니면 월세 거래로 이원화될 것
하지만 전세가 상승이 결국은 매매 시장을 달굴 것이라는 전망이 이론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현아 전문위원대우가 작성한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상관관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한국감정원 박기정 연구위원도 '전세 시장의 지역별 특징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매매 가격 변화는 전세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만 전세 가격 변화는 매매 가격 변화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전세 가격은 집값의 70%, 80%, 90% 이상으로 계속 오르기만 할까? 전문가들은 매매 수요가 정체되고 임대 수요만 팽창한 상황에서 변화의 방향은 결국 '월세 전환 확대'로 향하리라고 예측한다. 20%대에 불과하던 전국 아파트 주택 거래의 월세 비중이 올 들어 이미 30%대로 증가했지만(위 표 참조) 곧 70% 비중을 차지하는 전세 시장을 대체할 만큼 주요 임대 형태로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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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정원 박기정 연구위원은 "저금리 전세 공급자들의 월세 전환 선호는 전월세 전환율이 시장 금리 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임대 시장 내 전세 시장의 비중은 점차 위축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기개발연구원의 봉인식 연구위원도 '존폐 기로의 전세제도' 보고서를 통해 "전세 제도는 저금리 시장 침체 상황에서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 조만간 주택 시장은 매매와 월세 거래로 이원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월세 거래 확대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착한부동산투자연구소 장인석 대표는 "애초에 전세 제도가 사라지고 월세화가 되는 것이 시장 논리상 자연스러운데 나라에서 전세자금 대출이나 매매 유도 정책으로 그 변화를 억지로 막다 보니 건설 대기업과 은행만 이득을 챙기고 서민들은 전세난에 시달리게 됐다"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기회비용과 물가상승률 등을 따져보았을 때 전세를 고집하는 것이 세입자에게 꼭 유리한 선택은 아니다. 전세 보증금으로 깔고 앉았을 목돈을 차라리 다른 곳에 투자하면 월세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수익을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매매 부진이 전세 가격을 올렸다는 착각에 대한 보고서'라는 글을 쓴 신주원(가명) 펀드매니저도 의견이 비슷하다. 잔인하지만 지금의 전세난이 '부동산 시장이 균형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구 구조, 주택 공급, 세계경기 추세 등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집값은 너무 높고 전세가는 너무 낮은 불균형이 존재했는데(실제 OECD가 발표한 '2013 행복지수' 자료에서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임대) 지출 비용은 OECD 34개국 가운데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낮다) 지금 그 간격이 좁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집값은 싸지고 전세가는 비싸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로 가리라고 전망하는 강 펀드매니저는 "높은 전세금을 못 버텨 그보다 4000만~5000만원 더 내고 집을 사는 것은 쓰레기를 줍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계속 전세로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금리 기조로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는 것도 막을 수 없고, 부의 쏠림이 극심해져 웬만해선 '렌트 시커'(rent seekerㆍ불로소득을 노리는 지대 추구자)가 등에 꽂은 빨대를 뽑아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추가 소득 창출' 아니면 '절약'밖에 없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벌거나(추가 소득 창출) 외곽의 오래된 집으로 옮겨 주거비를 아끼는 길(절약)만이 지금의 전세난, 앞으로의 주거난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라는 것이다.